할머니가 흘리신 또 한번의 눈물

20151231 수요시위 1

 

 

 

 

 

 

 

 

 

 

 

미주한국일보 기고문 전문

가주한미포럼 김현정 사무국장

2015년 12월30일

연말을 맞아 한창 들뜬 분위기 속에 갑자기 올해가 가기 전에 한일 양국 외교부장관들의 회담이 있을 거라는 발표가 있었다. 회담을 마친 양국 외교부 장관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일명 ‘위안부’ 협상의 전격적인 타결을 공표하였다. 아베총리가 일본정부의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사죄를 표명하고, 일본 정부가 약 8백3십만달러를 출원하여 그 돈으로 한국정부가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협상타결이 발표된 직후 미 국무부와 유엔의 반기문총장 등은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전격적인 “해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미일 정부는 축배를 드는데, 정작 당사자이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시는 게 아닌가. 지난 이십여년간 문제해결에 앞장서 온 이용수 할머니는 “이 합의안을 전부 무시하겠다”고 하시며, “우리가 돈 때문에 이 오랜세월을 외쳐온 줄 아느냐!”라며 절규하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1910년 한반도로 돌아가 보자. 조선왕조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후 우리민족은 35년간 어마어마한 수난을 당한다. 성노예로 14살 나이에 끌려가신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할머니들이 한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유일한 내용은, 우리가 힘이 약해 나라가 빼앗겨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씀이시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고 계신 할머니들이 온갖 수치심과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에 나와 전 세계를 누비시며 오랜 침묵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 끔찍한 반인륜 범죄를 폭로하신 덕분에 세계의 양심을 할머니들 편으로 만들었다. 이제 믿고 의지할 나라와 정부가 생겼으니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알려 다시는 일본이 이러한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노력으로 일본제국이 1932년부터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저지른 성노예 제도는 국가범죄 중에서도 ‘전쟁범죄’이며 ‘반인륜적 인권침해’로 인식되었고, 망언과 역사왜곡을 반복하던 일본은 세계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 활동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미국에 사는 한인동포사회가 앞장서서 미국 의회가 할머니들 편에 서게 한 것이었다. 2007년, 미의회에서 일명 “위안부 결의안”이라 불린 H.Res.121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다른 국가들에서도 연이어 국가차원의 결의안이 체택되는 파장을 일으켰다. 할머니들이 많이 지쳐있을 때였고, 그래서 더욱 우리 미주동포의 노력이 의미가 컸으며, 이는 한국사회가 미주동포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에도 동포사회가 나서서 미국 도처에서 공공부지에 기림비와 소녀상을 세우고 매년 연방의회에서 기념행사 등을 열면서 일본을 압박하고 할머니들께 힘을 드려 왔다. 할머니들은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시고 매년 미국을 방문하여 정치인 및 할머니를 응원하는 미국 시민들과 만나 증언을 계속하시면서, 다시 되살아나는 지옥같은 과거의 고통에 눈물지으시면서도, “여러분이 있어 힘이 납니다”며 우리를 오히려 격려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들 문제를 해결하자고 나선 한일 양국의 합의가 다시 할머니들을 울게 만들었다.

할머니들의 말씀은 이렇다. 일본군 성노예 시스템은 국가 주도하에 저질러진 전쟁범죄였고, 나이어린 소녀들을 포함한 수십만명의 여성을 강제로 끌고가 저지른 반인륜 범죄였기 때문에 다른 전범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국가적 차원의 책임인정과 사과, 그리고 법적 배상을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합의를 타결지은 후 일본으로 돌아간 기시다 외무상은 “우리가 잃은 것은 10억엔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일본이 “통감”한다고 한 그 “책임”은 할머니들이 요구했던 “법적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일본이 취해 온 입장보다 하나도 더 내준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합의문 안에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시민들의 힘으로 세워 놓은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그 뿐 아니라, 한국이 더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침묵서약마저 포함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한일 외교장관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 아베총리의 부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감행했다. 글렌데일에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가주한미포럼에는 월요일 아침 일본 언론들으로부터 “이제 글렌데일 소녀상도 철거할 것인가?”라는 문의가 쏟어져 들어왔다. 이러고도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해결을 했다며 축배를 들 수 있을까.

이번 합의는 할머니들이 짓밟힌 인권과 명예를 찾아드리자는 이 운동이 한미일간의 국가적 협력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정권의 정치적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져, 이십여년간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외쳐온 할머니들과 국제사회의 노력을 한꺼번에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합의안을 설득하겠다고 할머니들을 찾아간 외교부 차관들은 할머니들로부터 “당신은 어느나라 국민이냐?”라는 절규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지금도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북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이 잘못된 합의를 폐기처분하고, 일본이 제대로 된 해결을 하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이미 뉴욕 타임스, 영국의 가디언 등 주요 언론들과 학자들, 그리고 엠네스티 등과 같은 국제인권단체들은 피해자들을 외면한 합의안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은 여론을 두려워한다. 여기에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낼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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